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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덕분의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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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9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성인소설: 덕분의 결심

[무료소설] 덕분의 결심

「떡 하나 주면」


30. 덕분의 결심


미호는 터벅터벅 냇가로 나와 앉았다. 그리고는 하릴없이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떴다. 그녀의 머릿속은 문희가 하고 간 말들로 가득했다.


‘여우님한테 저는 그저 노리개일 뿐이지요?’


‘아니면 그냥 한 끼 식사에 불과하거나. 그렇지요?’


‘보통 사내들은 여우님과 한번 정을 통하거든 목숨을 잃고는 했는데, 저는 안 죽었으니까 그냥 호기심에 이러시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저 말고 다른 사내를 찾아보십시오.’


‘……여우님에게 제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저는 두렵습니다.’


미호는 그의 말들을 곱씹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인간들은 복잡해. 그냥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막상 문희가 저를 그렇게 피해버리니 미호는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잘 지내보자고 그 귀한 것까지 일부러 찾아 주었거늘, 감사하단 인사만 남기고 그렇게 휙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에잇!”


갑자기 성질이 난 미호는 주먹만 한 돌을 세게 던졌다. 풍덩! 돌이 빠지면서 시냇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물고기며 소라게며 생물들이 모두 식겁하여 도망치기 바빴다.


“배고픈데…….”


슬슬 허기가 지고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문희의 정기가 그리워지는 그녀였다. 그의 정기는 유독 싱싱하고 든든한 데가 있었다. 꼭 그처럼 말이다. 미호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다신 보지 말자 하였으니, 정말 이대로 영영 끝인 걸까? 나는 또 새로운 사냥감을 찾으러 다녀야 할까.


“아, 모르겠다.”


미호는 일단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아직은 조금 출출한 정도였기 때문에 좀 더 참을 만했다. 그녀는 몹시도 배가 고파 못 견딜 것 같은 그때까지 문희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기로 했다.


*


기분이 우울한 건 문희도 마찬가지였다. 미호의 아름다운 얼굴과 눈부신 나체가 계속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녀를 쭉 만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정기를 빨아 먹는 요물이었고, 인간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빠진 것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만남을 지속했다간 제가 죽을 것이 분명했다.


정기가 다 빨려서 죽거나, 상사병으로 마음의 병을 얻어 죽거나 말이다.


거기다 그 영물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않던가. 왜 제가 그녀를 피하는지, 왜 더는 만날 수 없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생각하는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단 뜻이었다. 대화도 통할 수 없겠지. 여러모로 미호와 더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그래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끝이었다. 스스로 끝을 내고 오지 않았던가. 자신은 곧 덕분이 정해준 여인과 혼인을 할 것이고, 그럼 미호와 만났던 일 모두 추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었다. 그저 훗날 예전에 제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어쩌다 한두 번 떠올리고 말, 그런 것에 불과했단 말이다.


문희는 쉬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는 미호의 대한 생각을 애써 털어내며 집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것인지 집안이 고요했다.


“어머니! 선희야?”


불러 봐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구나. 문희는 오늘 산에 가서 캐온 것들을 다듬기 위해 평상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때였다.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처음 보는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문희가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호범과의 정사로 진이 빠져 누워 있던 덕분은 몸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뒤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호범은 유유자적 누워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흘깃 쳐다보고는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었다.


더는 안 된다, 안 된다. 수 없이 다짐하면 뭐하나. 결국 이렇게 끌려와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을. 덕분은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다, 호랑이한테 붙잡혔는고.


물론 그녀라고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김 진사한테 보쌈당해서 꼼짝없이 그 늙은이와 거사를 치러야 하는 줄 알았던 그때는 하늘이 노래지는 줄 알았더랬다. 그에 비하면 이 남정네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하는 건 뭐……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니 문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못살게 구니, 몸이 축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 저 호랑이한테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하기에 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느냐?”


호범은 마치 덕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태연히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덕분은 입술을 깨물었다. 망할 호랑이, 눈치까지 빠르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나으리 때문에.”


“호오? 좋아 죽겠다 앙앙거릴 땐 언제고.”


“정말 이러실 겁니까? 어떻게 신령님이 인간과 합방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신계의 규율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덕분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래도 그는 기도 안 찬다는 듯, 콧방귀만 끼었다.


“인간인 주제에 신계니, 뭐니, 규율이니 뭐니 그런 걸 왜 신경 쓰느냐? 주제넘지 말아라.”


“하…….”


덕분은 헛웃음 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었다. 이렇게 시시때때로 끌려와 저이의 아래에 깔리느니, 차라리 예전처럼 수절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덕분은 아이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라도 하리라 굳게 마음먹은 채 호범을 떠나왔다.


*


문희는 초조하게 마당을 왔다 갔다 했다. 어머니가 어서 오셨으면 좋겠는데, 왜 오지 않으시는 걸까.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평상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남자를 흘깃거렸다.


세 식구의 집을 찾아온 낯선 남자는 심부름꾼이라 했다. 두꺼비 왕국의 왕자님 전언을 전하러 왔다고. 문희는 그 얘길 듣자마자 선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문희는 일단 말을 듣는 것을 미루겠다 하고는 덕분을 기다렸다. 그렇게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온갖 망상들이 그의 머릿속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누이는 지금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무사하기는 한 걸까. 남자에게 묻고 싶어도 선뜻 묻기가 겁났다. 무슨 소릴 듣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느니 어머니와 함께 듣고 상의하는 편을 택하기로 한 그였다.


“문희야, 왜 나와 있……누구시니?”


얼마 후,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덕분이 집에 돌아왔다. 문희는 얼른 그녀를 마중 나갔다.


“선희한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뭐? 왜?!”


덕분이 놀라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일어나 덕분을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저는 우리 왕국의 왕자님을 모시는 하인입니다. 긴히 왕자님의 심부름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왕자님이요? 아니, 그쪽 왕자님하고 우리 선희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아가씨께서는 지금 저희 왕자님과 함께 계십니다.”


“뭐, 뭐라고요?”


덕분이 경악하고, 문희는 입을 떡 벌렸다. 기어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는가 싶었다. 둘의 반응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하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왕자님께서는 아가씨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를 허락해 주실 때까지 아가씨를 데리고 계시겠다고 합니다.”


“……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남의 딸을 훔쳐 가서는 혼인을 허락해줄 때까지 돌려보내지 않을 거라니. 입술을 짓씹던 덕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결연한 얼굴을 했다.


“그럼, 우리도 같이 데려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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