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야릇한 동거 (덫에 빠지다) 42화
무료소설 여동생과 야릇한 동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여동생과 야릇한 동거 (덫에 빠지다) 42화
"왜 난 아무것도 못 느낀 건데..."
망연자실한 세아가 다시 한 번 이불을 들춰 속옷 차림의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야! 한기호!!"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의 곁에 누워 곤히 잠들어있는 기호를 주먹으로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먹질에 부스스하게 눈을 뜬 기호가 그녀의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전부 받아내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은 채로 씩 웃으며.
"너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뭐야!!"
세아는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 뒤 기호를 발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침대 아래로 떨어져 놓고도 꿈쩍도 않고 웃고만 있다. 그 모습이 상당한 충격이었고 소름이 돋았다.
"왜 웃어? 왜 웃고 있는데? 너 아프단 건 어떻게 된 건데!!"
"자고 나니까 괜찮아 졌어."
멍하니 굳어버린 그녀의 눈앞까지 기호가 다가왔다.
"넌 잘 잤어?"
그가 세아의 볼을 손 안에 감싸쥐고 찬찬히 쓸고 있었다. 바로 쳐내고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왜 이런지 말이나 해봐! 내 옷이 왜 이래? 니가 벗겼어? 니가 한 거야?"
"뭘 그렇게 놀라는데..."
"그럼 안 놀라? 난 어제 술 한 잔 마신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나도 모르게 옷을... 어떻게 옷을..."
기호에게 따지면서도 따질 것이 없음을 알았다. 한 번 잠들면 누가 건드려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깊이 잠드는 이세아. 자신의 잠버릇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설마...
"뭘 했어? 옷이 이렇단 건... 설마 너... 설마 나한테..."
세상을 잃은 듯 눈물이 굴러 떨어지니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티슈를 건넸다.
"야... 울지마."
"어,어떻게 안 울어!! 이건... 내가 자는 사이에 이런 짓을 한 거야? 너 이거 범죄야!!"
펑펑 울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기호가 쉬지 않고 티슈를 건네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닦는 기호의 손길을 쳐내며 아랫 부분을 움찔거려 보았다. 하지만 시진과의 관계 이후 느껴지던 미세한 통증이 없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건가?
그리고 어제 이곳으로 오라 시진에게 문자를 보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작은 원룸 방엔 그들 둘뿐이었다.
"야! 대답해봐. 내 옷 왜 벗겼냐구 물었잖아!"
기호는 한동안 대답이 없다 이내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눌렀다.
"귀엽긴."
뭔데...
이건 무슨 반응인데? 했다는 소리야?
알 수 없는 애매한 대답만 하고 있는 기호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말을 제대로 해... 내 옷이 왜 이러냐고. 다시 묻게 만들지 마."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너 혹시 나한테 무슨 짓 한 거면... 신고할 거야. 죽여버릴 거야..."
부들부들 몸을 떨며 기호를 노려보자 곧바로 손을 젓는다.
"야. 그런 거 없었어. 그냥... 니가 잠결에 나랑 니 애인을 착각한 건지 갑자기 안고 옷을 벗길래... 난 그냥 가만 둔건데... 나 좋아하나 해서..."
말도... 안 돼.
"그래서 넌 가만히 있었고?"
"어. 니가 벗은 거야."
거짓말...
거짓말이다.
지금껏 그런 식의 잠꼬대를 해본 적은 없었다. 옷을 벗다니. 거짓말인 것이다. 한기호가 벗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니라 잡아뗀다 이거지...
이런 일을 시진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상담할 일도 아니었다. 신고해서 일을 키운다면 시진이 알게 될 것이고 그와 이별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 변태같은 자식은 다시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일단 당장 해야할 일은 외박을 해버린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시진에게 달려가는 일일 뿐이었다.
"아, 씨... 눈 감아!"
침대 아래에 흐트러져 있던 옷을 빠르게 주워 입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흐려졌다.
**
세아는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취하지도 않은 그녀와 잠결에 어느 정도 선을 넘은 듯 보이고 싶었는데, 신고를 하겠다니 상황이 곤란해졌다. 겉옷만 벗겨두고 쳐다만 보았던 게 전부인데 그녀가 부풀려 말한다면 고소를 당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괜히 일을 친 건가?
이 일이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좁혀줄 것이라 믿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는데... 내심 기대했는데 속이 씁쓸했다. 보통 몸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마음도 따라오곤 했다. 지금껏 겪어온 여자들은 그랬다.
세아도 우리가 키스한 건 아니냐, 다른 일을 벌인 건 아니냐 물으며 볼이라도 붉어질 줄 알았는데... 신고하겠다... 죽여버린다고 했던가... 다른 이유로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발견하곤 내심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세아를 좋아했다. 이후에도 문득 한 번씩 떠오르는 세아의 집앞을 찾아가본 적이 많았지만 그녀는 이미 이사를 간 이후였다. 그녀를 찾아내어 말을 건넬 용기는 없었다. 아주 오래 전 잠깐 짝으로 지냈을 뿐인데 널 잊을 수가 없다며 스토커처럼 접근한다면 어떤 여자가 반겨주겠는가.
그런 세아를 워터 월드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 그녀를 잡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사귀고 싶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 씨..."
세아가 울고 있었다.
"야..."
"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어깨에 살짝 손 한 번 얹은 것 뿐인데 진저리를 치며 밀어낸다.
"미안하다... 그만 울어라."
"미안해? 미안할 짓 한 거야?"
"아니..."
"근데 왜 그런 소릴 해!! 왜 거짓말 해? 내가 벗은 거 아니잖아..."
"...."
"나쁜 새끼... 나 남자친구 있는 거 알지 않아? 너 이런 새끼였어?"
티슈를 건네던 기호의 손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세아가 핸드폰을 챙겼다.
"나쁜 새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세아와의 사이가 완전히 끝이 났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오만했던 탓이었다. 부끄러워할 그녀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화를 내고 도망가는 그녀라니...
내가 너에겐 그렇게 별로였을까?
"너 신고 안 할 거니까, 대신 다시는 연락하지 마. 연락하면... 오늘 일로 너 경찰서 불려갈 줄 알아."
차가운 세아의 목소리... 그녀가 바로 원룸을 나가 버렸다.
**
혹시나 기호가 따라올까 싶어 달리듯 골목을 내려왔다. 그대로 도로로 걸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오피스텔로 향하는 내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심장이 살을 찢고 나올 듯 요동쳤다. 기호에게 간다 문자를 보내놓고 외박을 해버렸다. 시진이 오해하고 화를 내고 이별을 고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불안한 가슴은 도어락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사귀던 중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죄책감에 자신에 대한 증오심마저 커지는 것을 느꼈다. 겨우 가진 남자를 놓치게 될까 두려워 대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다 왔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도무지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나있을까, 뭐라 말을 해야 할까...
일어나 보니 옷이 벗겨져 있었단 것까지 알게 된다면, 시진과는 영영 끝일지도 몰랐다. 그가 뭘 물어오든 표정 관리 잘 하자.
도어락을 누르던 순간 먼저 문이 열렸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만큼 차가운 표정으로 그가 서있었다.
"오빠..."
시진을 보자마자 굳어버려 준비했던 말을 하나도 꺼낼 수 없었다. 멍하니 서있는 세아의 손목을 낚아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빠..."
시진이 대답 없이 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내가 실수로 잠이 들어서... 근데 아무 일 없었고 나 바로 집에 왔어. 기호도 아파서 계속 누워서 잠만 잤고..."
"넌 어디서 잤는데."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 그 집."
"아니. 어디서. 침대에서?"
"아니! 의자!"
"니가 의자에서 자는 걸 보고도 그 새끼가 가만 뒀다고?"
이젠 날카롭게 세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답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부터 끄덕였다.
"걔도 계속 잠들어 있었으니까. 아무 오해도 하지 마. 오빠한테 거기로 오라고 내가 문자도 보냈었잖아. 근데 왜 안 왔어?"
"한기호 집 모른다."
"아... 별로 안 친했구나... 난 많이 가깝다고 생각해서.."
"핸드폰은 왜 꺼놨어."
"꺼놓은 게 아니라.. 변기에 빠져버렸어.."
주머니에서 배터리를 분리해놓은 핸드폰을 바로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오빠한테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기호 핸드폰도 부서졌대서... 바로 집에 왔어야 했는데 걔가 일어나서 걷지도 못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죽이라도 해주고 나오려다..."
중얼거리던 세아는 바로 말을 멈췄다. 이렇게 횡설수설 한다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바닥만 보고 있는 시진이 두려웠다. 화를 내고 욕을 한다면 받아줄 수 있겠지만 만약 헤어지자 말한다면...
"앉아."
시진이 말했다.
"어?"
"와서 앉으라고."
차라리 화를 내주길 바라는데도, 그가 너무도 침착한 목소리로 세아를 불렀다.
천천히 걸음을 떼어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의 기분처럼 소파가 아래로 푹 꺼지며 가라앉았다. 그 순간 소파 한 구석에 흩뿌려져 있던 장미 다발을 보았다.
"하.."
고개를 숙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구석에 세게 집어던진 것처럼 꽃송이가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다. 별 것 아닌 그 작은 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저렇게 많은 장미를 준비했던 것이다... 투투... 요즘엔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는 그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아무 말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으니 시진이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뭐가 미안해서 우는 건데... 미안할 짓 했어?"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 왜 우는데."
자신을 보는 시진의 표정이 이토록 냉정했던 적은 없었다.
"이런 일 겪게 해서... 그게 미안해서... 다신 이런 일 없어."
“없어야지. 딴 놈 집에서 외박을 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가 두려웠다. 떠나지 않기를...
“미안해...”
**
“어젠 어떤 식으로 연락이 온 건데.”
시진이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물었다.
"갑자기 전화해선 걔가 아프대... 근데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렸어... 근데 그게..."
"근데 그게 걱정이 됐다는 거네."
"아니... 그냥 단순히... 오빠도 같이 가서 걔 간호해주다 오면 되겠지... 그런 생각 하느라..."
이렇게 유치한 짓 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견뎌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