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내 몸에 들어오려는 그 사람) 14화
무료소설 시아버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6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시아버지 (내 몸에 들어오려는 그 사람) 14화
그녀가 품어대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갑자기 역겨워지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상쾌한 공기가 필요했다. 내 숨을 억누르는 이곳의 공기가 너무 싫었다.
나가고 싶다. 그녀와 시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숨이 막혔다.
“아가야, 왜 그러니?”
“….”
“언니 안색이 안 좋아요.”
언니, 처음 본 나에게 그녀는 언니라고 했다. 아니,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젯밤, 그 여관에서 그녀는 나를 벗기고 빨았을지도.
“네?”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니요. 갑자기 졸려서.”
“그러냐.”
“아, 저 잠시 나가서 내일 먹을 빵 좀 사 올게요.”
“지금?”
“네.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언니 같이 갈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곧 돌아올게요.”
“그럼, 빨리 갔다 오너라.”
나는 지갑이 든 가방과 다운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라도 좋아, 여기가 아니라면.
뒤돌아보니, 창가에서 아버님이 쓸쓸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무엇이 좋은지 아버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빵을 사러 간다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단지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잠시라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말일까?
사실일까?
그게….
그녀와 아버님이 나를 묶고, 내 눈을 가리고 공범처럼 내 몸을 탐했을까?
나는 눈이 가린 채 저들 앞에서 미친 듯이 헐떡였을까?
만약, 그녀라면,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밤길을 걸으며 분노도 슬픔도 아닌, 체념의 감정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설사, 그것이 아버님과 그녀라도 이젠 상관없는 일이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닌, 술의 의지였다.
그건, 내가 아니다.
어느새 역 근처까지 걸어왔고 어제 아버님과 함께 왔던 바를 발견했다. 저곳이 발화지점이었다. 내 마음의 불이 피어난 곳.
저곳에서 다시 찾아내고 기억하다 보면, 내가 누구를 만나, 왜 여관으로 갔는지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바는 어두웠고 사람들이 없었다.
분명 어제 왔음에도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처럼 보여 너무나 낯설고 괴이했다.
나는 어둠을 더듬듯 천천히 걸어가 카운터에 앉았다.
“마시기 쉽고 따뜻한 칵테일로 주세요.”
“네.”
마시기 쉽고 따뜻한 칵테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바텐더는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바텐더가 셰이크 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 거지같은 크리스마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있고 시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있다.
그러는 나는 왜 혼자일까?
“알렉산더입니다. 여자에게 인기인데, 천천히 맛보세요. 약한 술이 아니라…”
그가 완성된 칵테일이 내밀었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알렉산더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 그러면 난 왕비인가?
나는 마치 사약을 마시듯이 입안에 술을 넘기며 눈을 감고 맛보았다.
순간, 독한 기운이 아닌 초콜릿의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지더니 따스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부드럽고 맛있네요,”
“부드러운 것에는 항상 가시가 있기 마련이죠. 알렉산더는 중독성이 강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려요, 젝레먼이 주연한 술과 장미의 나날이란 영화에서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에게 처음 권하는 술인데, 결국 두 사람은 알코올중독이 되고 말죠. 어쩌면 남녀의 사랑도 같은 거 아닐까요? 부드럽고 맛있다고 느끼면서 서로 중독되고 마는….”
나도 중독되어 버린 것일까, 그에게?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자상함에.
아니면, 맛있었던, 내 몸을 녹여버린, 그 달달하고 짜릿했던, 그의 그 맛에.
“그런데, 오늘은 혼자인가요?”
“예.”
“아…, 그럼 천천히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되세요.”
나는, 즐겁지가 안아요, 그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대신했다. 나는 크리스마스에 갈 곳 없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고 잔 속의 술만이 나를 알고 있었다.
술에 중독된 사람처럼 나는 깨끗이 잔을 비워내었다.
“한잔 더 하실래요?"
“네. 같은 걸로 한 잔 더 주세요.”
바텐더는 능숙한 솜씨로 칵테일을 만들어내더니,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건, 선물이요.”
“선물이라니요?”
바텐더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눈길을 돌리자 나는 그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점장이 잔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저 사람이 여기에 왜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는 어제 여기에 어떤 여자와 있었다. 그래, 그를 의심했다.
그와 있었던 여자와 나를 여관에 데려와 몹쓸 짓을 했던 남자가 그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나는 왜 점장의 존재를 어느 순간, 까마득하게 지워버리고 시아버지만을 의심했을까?
유력한 용의자인 저 남자를 잊어버린 채.
그가 잔을 들고 다가왔다.
마치 범인이 현장의 상황을 다시 보려고 오든 것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
“외로워 보이네요? 바람이라도 맞은 건가요?
“혼자 있고 싶습니다.”
“나도 외로워서 여기에 왔는데….”
그가 내 잔에 건배를 하듯이 유리잔을 부딪치자 ‘쨍’하며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건배한 잔은 마셔야죠.”
“……”
잔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예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여 이 잔을 왜 나에게 주시나이까?
“방해는 하지 않을 게요.”
나는 멍하니 술 잔속의 술을 바라보았다. 술에는 죄가 없다.
그리고 나도 죄가 없다. 여관방에서 저 남자와, 시아버지와 아니면 모르는 남자와 음란한 짓을 한 나도 죄가 없다. 난 그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을 뿐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었다.
몇 잔을 마신 걸까? 난 달콤한 맛에 도취되어 점장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술을 마셨다. 그 역시 그런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그저 건배만을 한 채 마셨다.
문득 그의 얼굴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새삼 술의 힘이 놀라웠다.
그토록 혐오하던 그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다니….
술을 마셔서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안내 팻말을 찾아 자리를 뜨자 발걸음이 비틀거렸다.
“지영씨 괜찮나요?”
“아….네.”
재밌게도 바닥이 움직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속옷을 내리자 오늘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를 바라며 아껴두었던 속옷이 나왔다. 괜히 천박해진 나의 상상에 웃음이 나왔다.
화장실에 나와 손을 닦으며 거울을 쳐다보다. 꼴사나운 여자가 비쳤다.
“후훗…, 아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손을 닦으며 웃었고 화장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웃었고 수돗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웃었고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를 보고는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휘청거리는 발등까지도 웃겼다.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나를 향한 비웃음인지 모를 웃음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킥킥거리고 웃으면서 자리에 돌아오자 남겨둔 칵테일은 치워지고, 물이 든 잔으로 바뀌어 있었다.
“응? 아하하. 이게 물이다. 후후. 아하하하하.”
“지영씨, 우리 나갈까?”
“가요? 어디로?”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당신이 나를 왜 데려다줘요? 당신이 나를, 왜, 어디로?
내가, 왜, 어디로, 당신과, 함께, 왜, 나가야 하는지.
“지영씨. 괜찮아? 지영씨, 지영씨.”
“……….”
누구?
어디였더라?
철컥하고 문이 닫히다 소리가 나고 나는 누군가에 몸을 의지하면서 발라당 누웠다.
어스름 속에서 응시한다.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누구?”
“칵테일은 조심해서 먹지 않으면, 위험해. 술이 별로 세지 않구나.”
차가운 반말이 들렸다. 좀전까지 부드러웠던 존대였는데, 나에게 싸늘한 반말을 하는 당신은 누구?
“점장인가요?”
나는 침대 위에 있고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다.
“돌아갈래…, 나갈래요.”
일어날 것이 힘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했어.”
“그래도 나갈래요.”
“남편이 바람 피운다며?”
미친년, 그런 말을 저 남자에게 언제 한 거야?
“……….”
“시어머니 장례식 때 봤어.”
“네?”
“담배를 피우다가 수상한 두 사람을 봤어.”
“……….”
“인기척을 느끼자 황급히 떠나더군. 당신 남편과 여자였는데….”
“돌아갈래요.”
“외롭다며…, 나에게 외롭다고 말한 건 이런 걸 원하던 게 아니었어?”
뒤에서 끌어안는 남자.
“……….”
“지영아! 외롭지?”
“손 치워. 건드리지 말아!”
“지영아, 지영아.”
손이 옷 위로 가슴을 강하게 주물렀다.
구역질이 났다.
기분 나쁜 입술이 목덜미를 핥고 술 냄새가 풍겼다.
그런데, 그때, 쨍한 감각이 내 몸을 마비시켰다.
어제 내 입을 키스하던 입, 그 입에서 풍겨 나왔던 내음, 바로 그 냄새였다.
나를 마비시켰던 그 남자가 바로 당신?
그를 밀어내야 했지만,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