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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제안 1장. 흔한 헤어짐 (1) 1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6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1장. 흔한 헤어짐 (1) 1화

그때 말이야.

만약 그때, 내가 그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지금 우린, 어떻게 됐을까……?

 

***

 

태양그룹 신입사원 연수원.

오늘로 신입사원 연수 두 달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짧게는 주 단위로 끝나기도 하는 신입사원 연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 년도는 석 달이라는 거다.

왜 하필 내가 들어오는 해에 이렇게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태양그룹 신입사원 연수는 뭔가 힘들다는 걸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이상함이 있었다.

그 예로 다른 곳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음악과 미술 같은 영역까지 시험을 봤다. 모든 영역에서 두드러진 글로벌 인재로 키우겠다는 명목이지만 선뜻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집안 형편 탓에 예체능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나는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그림도 그렸고 피아노도 학교 음악 선생님과 잘 치는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배웠다.

그 결과 중학교가 끝날 때쯤에는 악보를 보면 어지간한 건 다 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에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 연주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냥 일회성 행사였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지만 악기를 얼마큼 다룰 수 있는지, 재능이 있는지를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를 각각 따로 그려서 제출했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작문 숙제도 많았고 디지털화된 이 시대에 글씨를 보겠다는 건지 붓글씨와 펜글씨 등을 보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신체검사를 한다며 피검사 같은 기본적인 것과 MRI까지 찍었고 각종 알레르기 반응 검사까지 했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뭔가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정도로 많았지만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치, 경제, 시사상식 공부와 프로젝트만으로도 하루해가 짧았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 있었지만.

하지만 여기는 태양그룹 아닌가. 재작년을 기점으로 세계 50대 기업으로 발돋움한 태양기업에서 하라는데 못할게 뭐가 있을까?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여기에 내가 가진 전부를 걸 생각이었다. 수석으로 들어왔다면 나갈 때도 수석으로 나가야 했다.

수영과 달리기 기타 체육활동도 평가항목에 들어가 있었다. 보통은 기초체력 테스트와 협동심 도모를 위한 기본적으로 거쳐 가는 과정이었지만 태양그룹은 아니었다.

공부만 하느라 조금 약해져 있던 몸이 오히려 연수원에 들어와서 더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이렇게 운동까지 시켜 주니 말이다.

타고난 건강체질이라 여태껏 감기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을 만큼 낳아 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했다.

그렇게 검사를 해 댔는데, 오늘은 또 심폐지구력을 측정하시겠단다.

여기가 태능선수촌이야 뭐야?

속으로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뛰라면 뛰어야 했다. 그리고 결승점에 최단시간 내에 도착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400트랙을 10바퀴를 돌아야 끝나는 테스트였다.

 

“마지막 바퀴~!”

 

체력테스트를 담당하는 교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운 날씨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내 앞에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유정이가 탐스러운 엉덩이를 흔들며 앞서가고 있었다.

운동이 취미이자 특기라고 하더니 재능이 있나 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안 되지만 다른 여자 동기들은 다 한 바퀴 이상 뒤처져 있는데 혼자 저렇게 남자들까지 제치고 뛰다니 정말 대단했다.

날씨는 더웠고 땀은 비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남은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달렸다.

 

“헉헉!”

 

“유지훈! 이것까지 다 이겨야 되겠냐?!!”

 

“미안! 먼저 간닷~”

 

유정이가 그 와중에 볼멘소리를 했지만 난 그녀를 뒤로하고 스퍼트를 냈다. 50미터 정도를 앞두고 완전히 역전한 후, 난 그 속도 그대로 골인점을 통과했다. 그 순간 다리가 꼬이는 느낌이 들고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왜.”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걱정 가득한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가더니 더 이상 눈을 뜰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

 

“우와~!!”

 

드디어 내가 해냈다. 이 길고 긴 전쟁에서 마침내 내가 이기고야 말았다. 컴퓨터 모니터로 확인한 입사시험 등수에 당당히 ‘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그 뒤로 내 이름 ‘유지훈’이 적혀 있었다.

 

“됐어! 오예~ 우후~! 아~~!!”

 

미친놈처럼 방 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만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봐도 내 등수에 적힌 숫자는 그대로였다.

한국 최고 회사이자 몇 년 전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태양그룹에 수석입사를 내 손으로 이루어 내고야 만 것이다.

이 지긋지긋하고 허름한 방을 벗어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듯했다. 한참을 방방 뛰다가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그럼~ 합격했지~! 엄마 아들이 누구야?! 작년엔 컨디션이 나빠서였지~ 알았어. 주말에 내려갈게. 어~ 고생 많았어. 엄마~ 나도 사랑해~!”

 

없는 살림에도 지원을 해 주시려고 늘 노력하셨지만 나는 언제나 혼자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나갔다지만, 나는 학원 대신 혼자 독서실을 다녔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과외나 학원을 다니는 얘들을 젖히고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느끼는 쾌감도 있었지만, 대부분 목표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밤잠 설쳐 가며 노력한 것이었다.

친구들이나 학교의 선생님들은 다 나를 천재쯤으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간의 노력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한 노력들은 중·고등학교를 거처 대학교까지 지속됐다.

사실 작년 이맘때쯤 시험이 있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파서 시험을 못 치르고 말았었다.

지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었는지 모른다. 그깟 돈 몇 푼 벌자고 너무나 큰 걸 놓쳐 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작년 하반기 다른 회사에 지원해서도 수석으로 합격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종적으로 거기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내가 최종 목표지는 오로지 태양그룹이었다.

역대 태양그룹 수석합격자들은 회사에서 특별대우를 받았고 엄청난 승진 속도와 기회를 보장 받았다. 다른 곳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태양그룹은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이미 남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었다. 천천히 가는 길보단 빨리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루가 지나고, 개인 SNS에 합격 사진을 올려 두었더니 여기저기에서 친구들이 연락해 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좋은 선자리가 있다며 쪽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다.

남들이 의대에 가거나 사시 준비할 때 나는 나름 꿈이 있었다. 이 나라의 최고 기업을 내 손으로 움직이는 꿈 말이다.

하지만 보다 더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잘 먹고 잘사는 데 있었다. 어차피 세상은 금수저들이 대부분의 것들을 갖겠지만 적어도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높이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수석합격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저녁 무렵 시끄럽던 전화기가 또 한 번 울려 대서 확인해 보니 은지였다. 헤어진 지 정확히 6개월 만에 은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내 외모와 학벌을 사랑했다. 그리고 내 가능성을 믿고 옆에 있어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내가 기껏 해 봐야 봉급쟁이 직장인밖에 더 하겠냐며 내 자존심이 바닥을 길 때까지 하염없이 날 깎아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마음을 거두지 않던 은지는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6개월 전 엄청난 집안사람과 소개팅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정치인이셨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급’을 강조하시더니 드디어 급이 되는 있는 집 사위를 보게 된 모양이었다.

사실 은지의 아버지도 줄을 잘 서서 전략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됐고 라인을 잘 탄 덕에 순식간에 최고위원이 됐었다. 그러니 나같이 가진 거라곤 머리 하나밖에 없는 놈이 오죽 우스워 보였을까.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믿었지만 더 이상 기다리는 건 힘들다고 했다.

어차피 누가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개인의 선택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를 속물이라며 욕했던 그녀가 결국 속물근성을 닮아 갈 거라고는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다.

집이 못살아서 돈이 없고, 공부를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소홀했던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해한다는 말뿐이었다.

헤어지기로 했던 날 은지는 내 방에 찾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나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것처럼 그녀는 한참을 내 품에 안겨 울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인지 한참을 울던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 그녀와 섹스를 했다. 말만 들었지 설마 이별하는 연인들이 정말 이별 섹스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그녀의 몸을 탐했고, 더 이상 사정해도 느낌만 있을 뿐 정액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미친 듯이 서로의 몸을 탐했다.

연애하면서도 해 본 적 없는 광란의 섹스를 이별하는 순간 했던 것이다.

 

***

 

울리는 전화기를 한참 바라보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침묵하자 은지가 먼저 말했다.

 

“그러네. 무슨 일이야?”

 

[소식 들었어. 축하한다는 말 하고 싶어서…….]

 

“고마워. 잘 지내지?”

 

[어. 혹시 시간 되면 한번 보지 않을래?]

 

“그래 나중에 한번 보자. 옛날에는 너 맛있는 것도 못 사 줬는데…… 내가 밥 한번 살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뒤통수를 맞은 것은 나였으나 나는 그녀에게 분노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그녀를 이해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녀가 나에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전화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사랑했던 감정은 사그라들고 마치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처럼 편안했다.

 

[지금 집이야? 나 근처인데 들러도 돼?]

 

“우리 집 근처라고?”

 

[어. 가도 돼?]

 

전화를 받으면서 돌아보니 방 안 꼴이 엉망이었다. 자위행위를 한 흔적이 넘쳐 나는 휴지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고 어질러진 침대와 이불들이 보였다.

 

“집안이 난장판인데.”

 

[훗, 여전한가보구나. 앞에 가서 전화할게.]

 

“어.”

 

바닥에 돌아다니던 어지러운 것들을 몽땅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대충 침대를 정리하고 방을 한 번 쓸었더니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지와 만날 때 설정해 두었던 비밀번호를 아직 그대로 쓰고 있지만 그녀는 문을 열지는 않았다.

문을 열어 주자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은지가 서 있었다.

 

“어, 왔어?”

 

“어. 들어가도 돼?”

 

“그럼.”

 

“샴페인 사 왔어.”

 

“뭘 그런 걸 사 와?”

 

“그냥 한번은 축하해 주고 싶어서…… 너한테 이런 좋은 순간이 오기를 나도 함께 바랬었는데.”

 

“앉아.”

 

조그만 식탁을 마주하고 은지와 마주 앉았다. 그녀가 사 온 샴페인을 따고 간단히 먹을거리를 내어 놓았다.

 

“여기는 여전하구나. 조금 더 남자 냄새가 나는 것 빼고는.”

 

“그렇지 뭐. 하루 종일 여기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알콜도수가 그렇게 높지 않은 샴페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지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은지였다.

 

“그만 마셔 취하겠다.”

 

“취하면 자고 가면, 되지. 왜 안 돼?”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러는 거지?

은지의 생각을 종잡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앞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모든 게 복잡해지는 것도 싫었다.

 

“집에 데려다 줄게.”

 

“피…….”

 

은지가 삐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번쯤 네가 화를 낼 줄 알았어. 나쁜 년이라고…… 그게 아니면 나한테 매달리거나. 이거는 좀 오버인가?”

 

“흠…… 이젠 다 지난 일이잖아. 그 남자랑 잘 만나는 거 아니었어?”

 

“잘…… 만나고 있지. 너무 잘 만나고 있지. 그래서 미쳐버릴 지경이야. 왜 그런 거 있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랑 안 맞는 사람…… 지나친 결벽증에 완벽주의. 그런데도 난 잘 만나고 있어. 아마 별일이 없으면 결혼도 하겠지.”

 

“그래…….”

 

“넌 이제 네가 원했던 것처럼 높이높이 올라가겠구나…….”

 

“글쎄 그 거야 누구도 모르는 거지. 지금부터 시작해 봐야 어차피 신입사원 나부랭이일 뿐인걸.”

 

“넌 어떨 때 보면 되게 바보 같아. 필요 이상으로 순진하고 웃음도 많지. 그런데 또 어떨 때 보면 냉혈인간처럼 차가워 보일 때도 있어. 나랑 헤어질 때가 그랬지.”

 

“여자 친구랑 헤어지면서 바보처럼 웃는 게 정상이냐?”

 

“푸훗. 하긴, 그랬나? 왜 이렇게 몇 년이 지난 것처럼 아득하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가니까. 나는 금방 갔어…… 꽤.”

 

“그랬구나. 나는 아닌데……. 나는 엄청 느리게 갔어. 엄마 따라온 재미없는 영화관에 앉아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애처럼…….”

 

“…….”

 

“내가 오랜만에 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했지?”

 

“너는 원래 그랬어~”

 

“하핫, 아냐~”

 

발그레한 얼굴로 웃던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네 생각 많이 했어. 여기 침대 위에서 나누었던 그 많은 밤도…….”

 

“어어? 위험수위야…….”

 

“뭐 어때? 우리는 볼 거 다 본 사이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이건 좀 곤란해.”

 

“바보, 너랑 헤어지고 내가 얼마나 아파했는 줄 알아?”

 

“그……랬어?”

 

“응, 여기가. 프하핫.”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은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야~! 놀랐잖아.”

 

“예나 지금이나 이런 거에 되게 잘 속는다, 너. 아이큐가 백오십이 넘을지도 모른다면서 이럴 때 보면 정말 허술해.”

 

“그거랑 아무런 상관없거든? 슬슬 이러는 거 보니까 취한 모양이다. 이제 일어나 집에 가야지.”

 

“알았어~ 이제 보기 싫다 이거구나? 갈게. 가야지.”

 

은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원룸의 좁은 식탁 사이를 빠져나오던 은지가 순간 몸을 휘청였고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곧장 그녀가 나에게 안겨 왔다.

너무 익숙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 덮쳐 왔다. 달콤한 그녀의 입술 사이로 혀가 미끄러지듯 내 입속으로 들어와 엉켜 버렸다.

바쁜 호흡을 억제하며 우리는 잠시 키스에 몰두했다. 마치 지금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나였다.

 

“……은지야.”

 

내가 제지를 하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늘 하루만 그때처럼 아무 말 없이 나 좀 안아 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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