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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제안 31장. 의심에서 확신으로 (2) 33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31장. 의심에서 확신으로 (2) 33화

“어허, 어…… 이제 오는 거야? 우린 늦을 줄 알고 먼저 시작했지?”

 

“아, 그러세요? 근데 아직 음식이 그대로네요.”

 

순간 오 실장은 당황한 빛이 역력해졌다. 음식은 젓가락까지 처음 세팅된 그대로였다.

 

“아…… 먼저 이야기 좀 하느라…… 앉지, 식사부터 하자고.”

 

그답지 않게 살짝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유정은 어느샌가 입가에 묻은 흔적을 지웠고 조용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 오 실장이 일 얘기를 꺼냈다.

 

“최근 공정위에서 재벌 2세나 자회사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나 봐.”

 

“그래요? 저희는 엄밀히 얘기해서 다른 곳처럼 자회사 형태로 몰아주는 게 아니라서 조심하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장인어른께선 뭐라고 안 그래요?”

 

“그쪽이야 뭐 태양에서 오더내리는 대로 따를 겁니다.”

 

“너무 그러지 말지…… 어차피 장인어른 돌아가시면 처형이 물려받아야 할 텐데, 지금부터 좀 애정을 갖는 게 어때요?”

 

“돌아가셔도 저랑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욕심도 없구요. 전 태양그룹 사람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뭐 어찌 됐든 우린 식구니까…… 앞으로 지훈이랑 같이 잘해 보자구요.”

 

“네.”

 

***

 

퇴근 후 집으로 가는데 유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훈 씨 어디를 잠깐 들렀다 이동해야 하는데 딱 30분 정도 비어요. 잠깐 볼 수 있어요?]

 

유연의 목소리가 밝았다. 사실 어제 그녀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럴 땐 그냥, 시간이 비니까 꼭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거기 위치 알려 주면 내가 갈게요.”

 

나는 곧장 차를 돌려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유연의 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유연의 차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내 얼굴을 확인한 유연이 바로 문을 열어 준다.

 

“날씨가 너무 덥죠?”

 

“우와~ 진짜 너무 더워요.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러게요 빨리 왔네요?”

 

“조금만 늦게 전화했으면 못 볼 뻔했어요.”

 

“그러게요. 갑자기 그렇게 돼서…….”

 

“난 좋다는 뜻이었는데……?”

 

“치~”

 

유연은 살짝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와 단아한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어디 가는 길이었어요? 이렇게 단아하게 차려입고.”

 

“오늘 저녁에 후원 행사가 있어서요.”

 

“그랬어요? 어머님이 시키신 일?”

 

“그런 것도 있지만 최근에 알게 된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좀 와 달라고 해서 가는 거예요.”

 

“언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네요? 꽤 친해졌나 봐요?”

 

유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처음에는 남편들끼리 모인 자리에 따라갔는데, 남자들이야 사업 이야기 하느라 바쁘고, 난 별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원래 하던 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누가 물어보면 대답이나 좀 하고 있었는데 그 언니가 먼저 말을 걸어왔어요.”

 

“그래요?”

 

“되게 쾌활하고 말도 살짝 거칠지만 매력 있게 해요. 사실 남편이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의 아내들은 대부분 또 다른 재벌 2세들이잖아요. 프라이드도 엄청 강하고, 연예인들이라면 일단 색안경 끼고 봐요.”

 

“어떤?”

 

“뭐 그런 것들 이죠. 놀만큼 놀아 봤다. 문란하다. 딴따라들은 천성이 어쩌구저쩌구…… 거기 있는 사람들이야 다들 고학력에 있는 집 자식들이니까, 그럴 만도 하죠.”

 

“유연 씨도 있는 집 자식이잖아요~!”

 

“에이, 우리 집은 그런 데 끼지도 못해요.”

 

유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사람들이 나쁜 거고 비정상이에요. 요새 나도 가끔 느끼는 건데, 오 실장님과 다니다 보면 내가 비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떤 면에서요?”

 

“그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나한텐 너무 이상하고 당황스러울 때 마치 내가 비정상인가? 여긴 다른 세계인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유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양손으로 내 뺨을 잡고 뚫어지게 응시해 왔다.

 

“나도 똑같이 그랬어요. 그래도 절대 그 세계에 빠지면 안 돼요. 알았죠?”

 

“알았어요. 뽀뽀 한 번만 해 주면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내가 살짝 웃고는 입술을 내밀었다. 살짝 눈을 흘긴 유연이 가만히 내 아랫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흡읍.”

 

뽀뽀를 하고 물러서려던 그녀를 가만히 놓아둘 수가 없었다. 재빨리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유연이 부드럽게 내 혀를 감아 왔다.

자동차에서 하는 키스는 언제나 그렇듯 불편하지만,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감미롭고 부드러운 키스였다.

잠시 갈 곳을 잃었던 내 손은 그녀의 무릎을 지나 치마 안쪽으로 서슴없이 침범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잠시 내 손을 가로막았지만 이내 힘이 풀려 버리고 말았다.

 

“흐읍, 하, 아…….”

 

그때 익숙한 멜로디가 울리며 유연의 전화가 울렸다. 유연이 손을 더듬어 휴대폰 일정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줬다.

 

“네, 언니…… 한 2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네, 알겠어요…… 이따 봐요…….”

 

“가 봐야 하죠?”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가 너무 귀여웠다.

 

“나랑 매일 같이 있고 싶죠?”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나도 매일매일 같이 있고 싶다…….”

 

유연이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휴…… 괜히 보러 왔어.”

 

“왜요?”

 

“이렇게 잠깐 보니까 더 아쉬워요…… 그냥 도망갈까요?”

 

“그럴까요?”

 

“치잇, 어디로 가요? 갈 데도 없잖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매일 기다려 달란 말만 해서 미안하지만…….”

 

“아니에요. 난 그 말만 믿고 기다리니까 미안해 하지 말아요.”

 

유연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그녀는 순식간에 다시 단정한 신유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훈 씨…… 나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어요.”

 

“뭔데요?”

 

“며칠 후가…… 사실 생리하는 날이에요.”

 

“생리 날……이요…….”

 

유연이 생리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긴장이 됐다.

 

“네…… 원래 생리 전에 전조 증상이 있는 편이에요. 아랫배가 살짝 뭉치거나 가슴이 단단해지고 그렇거든요…….”

 

“그런데요?”

 

“이번엔 그런 걸 잘 모르겠어요…….”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유연의 말이었다.

 

“늘 그런 증상이 있진 않아요. 가끔 나도 모르게 생리가 터져서 옷을 버린 경우도 있고.”

 

“항상 그랬던 게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봐요.”

 

“아무 일 없겠죠? 나는 아직……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잘은 모르지만 여자들도 생리 주기라는 게 있지 않아요? 정확한 편이에요?”

 

“비교적 그래요, 1년의 한두 달 제외하곤 거의 일정하게 하는 편이에요.”

 

“그럼 어차피 며칠 후엔 알 수 있겠네요…….”

 

“그럴 거예요.”

 

“혹시 어머님한테 이야기 안 하면…….”

 

“어머님도 알고 계세요 제 생리 주기……. 직접 챙기시고 이미 한의원도 예약돼 있어요. 임신테스트기 같은 걸 사용 못 하니까 맥을 짚어서 알아보신다구…….”

 

늙은 여우 같은 송 회장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리가 없었다. 빠져나갈 구멍 같은 걸 만들어 뒀을 리도.

 

“일단 오늘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행사 잘 마쳐요. 그리고 생리 날짜 되면 나한테도 연락해 줘요. 걱정되니까…….”

 

유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져 버렸다.

 

“인상 펴고~ 힘내요. 내가 너무 건강해서 걱정이긴 한데…… 헤헷, 아직은 아닐 거예요.”

 

“농담 아니라 나 심각한데…….”

 

“알아요. 근데 걱정은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 해도 안 늦어요. 그 언니 기다리겠다. 얼른 가요. 나중에 연락하구…….”

 

불안해하는 유연을 한 번 더 안아 주고 돌려보냈다. 그녀의 차가 멀리 서라질 때까지 나는 계속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고,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유연이 나의 아이를 가지는 것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유연이 아이를 가지고, 그래서 나와 단절된 상태가 되어 버린다면 미래를 기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최악은 면해야 했다.

마음이 급해져만 간다…….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분식회계 관련 자료들과 별도의 장부들을 백업해 둔 것들이었다. 내가 이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먼 훗날 나에게 무기가 되어 줄 것들은 이것밖에 없었다. 맨몸으로 태양그룹 후계자와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32장. 유연의 의미

 

 

아침부터 일이 바쁜 하루였다. 이렇게 오전부터 바쁜 날은 대개 하루 종일 바쁜 날이다.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유연을 생각했다. 어젠 하루 종일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얼빠진 사람처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지나가던 유정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혼자 살 때 아프면 자기 손해야. 미리미리 몸 관리 잘해라.”

 

“그래.”

 

유정이는 아직 모른다. 내가 오 실장과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만약 유정이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친구사이로는 힘들 거 같다.

그리고 유정이도 나에게 분명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나에게 유연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던 말들은 일종의 경고로 들렸다.

우리의 관계까진 짐작을 못하겠지만 내가 유연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정이도 느꼈을지 몰랐다. 세상에 결코 숨길 수 없는 게 기침과 사랑이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표정 관리를 한다 해도 순간순간 무장해제 되어 나타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들까지 감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황이 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잠시 후 오 실장의 호출로 그의 방으로 불려 갔다.

 

“오늘 저녁에 약속돼 있던 거 취소하고 날짜를 좀 미뤄야겠어.”

 

오 실장이 말한 약속이라는 건 정치인들과의 술자리 모임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러운 성상납 난교파티였다.

이런 류의 약속들과 스케줄은 이제 거의 내가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오 실장이 따로 개인비서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이미 오 실장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비서로 알고 있었다. 웬만한 자리나 행사에 내가 거의 함께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모시기 힘든 분들이라고 공을 많이 들이셨는데 왜 갑자기…….”

 

“집사람이…… 아이를 가진 모양이야……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고…….”

 

그가 다리를 꼬며 소파에 깊숙이 기댔다.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어, 축……하드립니다…….”

 

재빨리 되찾은 이성이 축하한다는 소리를 뱉어 냈다. 머릿속에서는 비명을 지르면서 말이다.

 

“축하는 무슨…… 아주 기분이 묘……해.”

 

오묘하게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축하할 일이…… 아닌가요?”

 

“그럴 줄 알았는데 말야…… 기분이 참 이상해……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아주…… 재미있어…….”

 

다분히 추상적인 말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상하다’와 ‘재미있다’는 말은, 아이를 처음 가진 아버지가 상식적으로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이런 데서도 통용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하게 알려면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우리 노친네가 이런 쪽으로는 고집이 세서. 말이 안 통할 지경이야…… 진짜 임신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병원에 가 보시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모르는 척 그에게 물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은 그게 안 돼. 그런 면에서는 아직 조선시대 정도의 수준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것 때문에 일찍 들어오라고 하시니까 오늘은 그래야 할 것 같아.”

 

“네. 그럼 예약 취소하고 비서관님들한테 제가 일일이 연락 드려서 사과 말씀 전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줘. 기왕 이렇게 되는 거 너를 그냥 비서로 쓸까? 비서로만 쓰기에는 일을 하는 능력이 좀 아깝고…… 이제 너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을 시키기에는 내가 너를 너무 믿고 있으니까…….”

 

“비서 아니라도 지금처럼 제가 스스로 비서라고 생각하고 일하겠습니다. 실장님은 그저 시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내가 준비하는 게 완성 단계에 오르기 전까지 네가 수고 좀 해라.”

 

‘뭘 준비한다는 거지?’

 

항상 그의 행보에 약간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보통 수준에서 하는 로비 수준이 아니었다. 오 실장은 막무가내라고 부를 만큼 전방위로 로비를 하는 중이었다.

기업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국회의원들은 따로 있다. 하지만 오 실장의 로비는 자신의 이익만을 관철하기 위한 로비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광범위했다. 거기에다가 언론에까지 끊임없이 접촉하는 상황이었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확인해 볼 필요성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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