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22장. 싸움의 시작 / 23장.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1) 25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22장. 싸움의 시작 / 23장.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1) 25화
“근데 너 같은 신삥이 이런 법인 차 끌고 다녀도 되냐?”
우리 집안 사정, 내 성격을 다 아는 녀석인지라 당연히 내 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버스표 살 돈으로 군것질하고 대신 함께 걸어 다녔던 우리에게 이런 차는 아직 무리였다.
“어, 뭐 그렇게 됐어.”
“운전 조심해서 다녀, 인마~ 이런 거 사고 나면 큰일 나~”
“네가 우리 엄마냐? 잔소리 좀 그만해라.”
“자고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취업하고도 전화 한 통화 틱 하고 잠수타고, 뭐 하는지 요새는 연락도 잘 안 되니, 말세야~”
“웃기고 있네. 키우긴 누가 날 키워?”
“기억 안 나냐?”
녀석이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나는 중2 여름방학 때 네놈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중2 여름방학…… 야이! 개! 아휴~!”
“큭큭큭, 이 동현이 형님이 너의 딸딸이 동정을 떼 준 게 정녕 생각이 안 난단 말이냐?”
동현이 녀석은 유난히 빨리 성에 눈을 뜬 편이었고 상대적으로 늦었던 나에게 신문물을 전파한 놈이었다. 그 충격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날만큼 뚜렷하고 파격적이었다.
케이스에 아무런 표시도 없는 비디오테이프가 그 시초였다. 화질이 구린 일본 포르노였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군, 친구.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잘해라~”
“지랄을 해라, 아주.”
이렇게 실없는 장난을 쳐도 동현이는 나름 인정받고 있는 펀드매니저로 성장해 있었다. 앞으로 내가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서는 녀석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였다.
“가는 길에 심심한데 대충 줄거리라도 이야기 해 봐.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인마.”
하여간 눈치는 또 엄청 빠르다.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는 만큼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놈이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 일단 한잔하면서 이야기해~”
“뭔진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사이즈가 큰데? 일단 먹여 놓고 시작하겠다 이거 아니야? 에라이~ 좋아. 일단 가서 먹고 보자. 비싼 술 안 사주기만 해 봐라~!”
***
룸으로 안내받은 동현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바빴다. 여기저기 안 굴러 다녀 본데가 없다더니 엄청 놀라는 눈치였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 본 놈처럼 말하더니 뭘 그렇게 놀라, 인마?”
동현이가 재빠르게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여기 술값이 얼마인지 말고 너 같은 봉급쟁이가! 근데 너 여기 예약은 어떻게 잡았어? 혹시 상사 이름 팔고 잡은 거야? 그러다 걸리면 큰일 나, 인마! 여긴 회원 위주로 예약하는 데라고. 얼른 나가자.”
동현이 호들갑 떠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설마 쫓아내겠어?”
“아~ 이거 진짜로 큰일 날 놈이네. 하긴 이제 들어간 햇병아리가 뭘 알겠어? 지금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고 헛바람만 잔뜩 들어서 이거.”
“야! 저리 가.”
그때 룸에 문이 열렸고 내가 동현이를 불러서 자리로 가라고 손짓했다. 검은색 초밀착 원피스에 어깨가 가슴이 한껏 파진 옷을 입은 서 마담이 룸 안쪽으로 들어섰다.
“지훈 씨? 벌써 와 있었네요. 다른 방에도 손님들이 오셔서…… 옆에 같이 오신 분이 친구 분?”
서 마담에게 영혼까지 빼앗긴 표정으로 동현이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 마담이 은근슬쩍 동현이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네. 어릴 적부터 친구예요.”
동현이의 취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현은 목이 타는지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아~ 불알친구?”
“푸욱~! 켁, 크헉…… 죄송합니다.”
서 마담이 웃자고 던진 농담에 동현이 녀석은 사례가 걸려 켁켁댔다.
누구보고 햇병아리라고 하는 건지…….
“하하핫~ 아주 재미있는 친구분이시구나?
역시나 놈의 시선은 서 마담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하여튼 취향은 백 년이 지나도 안 변하는 건가 보다.
“지훈 씨가 엄청 친한 친구인가 보다. 아니면 무슨 큰 부탁을 할 게 있든지. 우리 가게까지 이렇게 데리고 오는 거 보면…… 안 그래요?”
서 마담은 확실히 고단수였다. 정확하게 내 의중을 파악하고 있었다.
“부, 부탁이 뭐든 제가 다 들어줘야죠.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됐는데, 그럼요. 뭐하나 떼어 달래도 줘야죠.”
“친구분 너무 재밌다…….”
서 마담의 손이 동현이의 허벅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내가 찜해놓은 예쁜이들 있는데 지금 부를까요?”
“우선 이야기 좀 하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천천히 이야기들 나누시고 끝나시면 불러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 주시고.”
“감사하긴, 우리 사이에~”
서 마담이 날 보면서 살짝 윙크를 했다.
“오늘 내가 특별하게 잘 모시라고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재미있게 놀다가요. 친구분도~”
서 마담이 동현이를 향해 살짝 눈을 찡긋해 줬다.
“네, 예.”
자리에서 일어난 서 마담이 한 뼘이나 올라간 치맛자락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밖으로 나갔다.
“우와~”
서 마담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동현이가 호들갑스럽게 탄성을 내질렀다.
“너 봤냐? 내가 진짜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는데 끝판왕이다, 끝판왕. 저 가슴 수술이겠지?”
“자연산이야, 인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잠깐 잠깐!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분이 ‘우리 사이에’라고 한 그 말의 뜻은……?”
동현이 녀석이 갑자기 내 옆자리로 오더니 내 손을 잡고 흔들며 어깨를 두드렸다.
“친구야, 네가 정말 성공했구나. 그래! 나는 네가 그 작은 골방에 처박혀 있어도 언젠가는. 이렇게 잘될 줄 알았어.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하여튼 또라이~ 내가 태양그룹 수석으로 들어갔을 때도 성공했다 소리 안 하더니, 이제 와서 성공 소리를 하냐?”
“헤헤헤헤…… 흐흐, 성공이 뭐 별거냐? 이렇게 더운 날 이런데 와서 술 먹으면 그게 성공이지~ 한잔하자.”
비싼 술이라고 하는데 소주에 익숙한 나는 아직 그 맛을 모르겠다. 하지만 동현이는 좋다고 술을 마셔야 댄다.
“뭔데? 뜸 그만 들이고 말해.”
녀석이 술을 한 잔 더 들이켜고 째려보듯이 나를 바라봤다.
“현아.”
어린 시절, 우리를 부르던 엄마들의 애칭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 엄마는 훈아, 동현이 엄마는 현아라고 우리를 불렀다.
“아, 뭔데 얘기해. 답답해 죽겠네.”
“돈이 좀 있는데 말이야.”
“돈? 무슨 돈? 누구 돈?”
돈 이야기에 녀석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미안한데 그것까지는 묻지 말고, 어느 정도 세탁이 돼서 들어올 것 같긴 한데 이 돈을 해외로 좀 돌리고 싶다.”
“일단 정리를 해 볼게. 이런 식으로 나한테 물어본다는 건 적절한 외환거래법에 따라서 신고 할 생각이 없다는 거 아니야?”
“맞아.”
“액수가 얼만데?”
“50억.”
녀석이 다시 한 번 나를 쏘아봤다.
“내가 출처를 물어도 대답 안 할 거지?”
“미안하다.”
“훈아.”
“어.”
“너 진짜 말 그대로 이제 막 입사한 햇병아리야. 그런데 이런 일을 네가 꼭 해야 되는 거냐?”
50억이라는 돈이 내 돈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정이 좀 있어. 수수료를 아끼고 싶은 게 아니고 아예 출처 자체를 모르게 하고 싶어서 그래. 도와줄 방법이 있겠어?”
“후…… 아휴, 씨……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더 크게 하는 것들도 많은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 원래 이런 일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브로커를 통해서 해. 대신 돈은 좀 들지.”
“그건 상관없어.”
“50억이라…… 태양그룹 사이즈가 있는데 눈치로 봐도 회사일 같지는 않고, 누구한테 부탁을 받았나 본데, 항상 조심해.”
“그래서 내가 너한테 부탁하는 거잖아.”
“미친놈…… 일단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어. 아주 클래식하게 직접 들고 나르는 방법도 있고,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환치기나 뭐 기타 등등 방법들은 많아. 뭘 선택하느냐가 문제지. 돈을 아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 생각에는 조금 방법을 꼬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돈의 출처가 꼬리 잡힐 일은 없겠지?”
“없어. 내가 불지 않는 한.”
“미국이랑 필리핀으로 좀 알아봐 주라. 투자할 만한 곳도.”
“투자까지? 내가 아무리 끼워 맞추려고 해 봐도 뭔가가 이해가 안 돼. 너~ 휴…… 아니다. 말자, 말어. 그냥 술이나 마셔.”
“고맙다 동현아.”
“징그러워 새꺄~! 술이나 처먹어.”
“네가 좋아할 만할 여자를 내가 미리 부탁해 놨지~”
“너 이 새끼~”
꼭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이야기했으면 도와줬을 놈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온 건 오랜만에 술도 한잔 마시고 그동안 신세졌던 것도 갚기 위해서였다.
연락을 하니 곧 두 명의 여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딱 봐도 얼굴보다 상체, 그것도 가슴으로 먼저 눈이 가는 타입이었다.
얼굴도 몸매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여자들이었다. 한 명은 단발머리에 키가 작은 편이었고 다른 한 명은 키도 크고 옅은 오린지색 머리였다.
“야, 침 좀 닦아라.”
“쓰읍…… 내가 그랬냐?”
동현이 재빨리 내 옆으로 튀어 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넌 누구로 할 거야?”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일어나 옷을 챙겼다.
“인마, 너 왜 그래? 어디가려고?”
“난 일이 있어서 간다.”
“뭐? 왜? 그럼 난?”
“혼자 두 명은 감당 안 되냐?”
황당한 표정을 짓던 동현이 그제야 내 속내를 파악했는지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잘 부탁드려요.”
“마담 언니께서 당부하셨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걸어갈 수만 있게 해 주세요. 동현아, 그럼 나 간다. 좋은 밤 보내라.”
아마 내일이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전화가 올 것 같다.
그건 그거고 갈 때 가더라도 서 마담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얘기하자 잠시 후 그녀에게 데려다주었다.
“친구랑 같이 왔으면서 왜 더 안 즐기고?”
“그냥 이야기만 하러 왔어요.”
“그래서 그냥 가겠다?”
“네. 헤헤헤.”
서 마담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또 쳐다봤다. 이렇게 쳐다보면 왠지 또 속마음을 들킬 것 같다.
“아~ 알았다.”
“뭘요?”
“여자! 있구나?”
이쯤 되면 점쟁이가 따로 없다.
“티나요?”
“남자들이 이런데 오면 백 중 구십구는 다 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안 그런 사람도 간혹 있죠. 딱 두 부류인데, 고자거나 아니면 죽을 만큼 여자를 사랑해서 도저히 배신할 수가 없는 경우, 지훈 씬 고자 아닌 거 내가 확인했으니까 여자 문제겠죠.”
“서, 아니…… 혜진 씨에겐 뭘 숨길 수가 없겠네요.”
“돗자리 깔고 장사하면 잘하겠죠?”
“엄청요~ 이제 그만 가 볼게요. 친구 놈 좀 잘 부탁해요.”
“알겠어요.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요.”
“그런데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세요?”
“말했잖아요. 사연 있어 보이는 남자한테 약하다구…….”
“왜요?”
그녀의 눈이 잠시 허공을 맴돌았다.
“내가 그랬으니까…… 지름길로 가고 싶어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녔으니까.”
“그랬군요.”
“천천히 해요. 뭘 하든 충분히 생각하고 주위를 잘 살펴요. 내가 제일 잘나고 똑똑한 거 같지만, 사람이 맹목적이게 되면 늘 뭔가를 놓치게 되거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항상 신중해요~ 알았죠?”
“감사합니다. 가 볼게요.”
“그래요. 또 봐요~”
23장.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연일 35도를 넘고 있다며 무더위와 폭염에 대비하라는 앵커의 목소리가 나날이 재방송처럼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구내식당이 붐비게 되어 있다. 거기에 태영그룹 구내식당은 국내 그 어느 회사보다도 훌륭한 식사로 유명했다.
유정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앞자리에 식판을 놓았다. 사실 요 며칠 유정이와 좀 소원했다.
유정이가 증오하는 대상이 누군지, 유연이 언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하는지 내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넌 왜 의리 없이 혼자 먼저 나와서 먹고 있냐?”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먼저 말을 건넸다.
“솔직히 너 요새 나 좀 불편하잖아.”
말을 하면서도 유정이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밥을 먹고 있었다.
“아……니거든?”
나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유연의 얘기를 꺼내 볼까 고민했지만 유정이는 표정으로 말을 걸지 말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싱거워?”
괜히 실없는 말을 던지며 유정이의 반응을 탐색했다.
“나 다 먹었어. 먼저 일어난다.”
“어? 벌써? 좀 더 먹지.”
“간다.”
왜 저러지? 요새 뭐가 안 좋나?
서둘러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회사 내 카페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샀다. 그리고 유정이를 찾아 나섰다. 나는 이미 유정이가 갈 만한 장소를 알고 있었다.
회사 상층부에는 직원들의 위한 휴식 공간으로 야외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야외정원으로 나왔지만 역시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오히려 실내가 더 붐비게 되어 있었다.
‘유정이도 없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맨 끝까지 걸어가 보니 난간에 팔을 걸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유정이가 보였다. 난간에 커피를 올리고 슬쩍 유정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한테 위치 추적기 달았냐?”
“척하면 딱이지 그거 모르겠냐?”
“머리 아픈 이야기 할 거면 하지 마라…….”
“이해는 한다. 나라도 불편해서 이야기 안 했을 것 같아. 먼저 알았더라면 너랑 이렇게 친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래…….”
“저번에 심장 안 좋아서 쓰러지셨다는 분 괜찮으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