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 12장. 네가 사는 그 집 (1) 17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12장. 네가 사는 그 집 (1) 17화
“그게 말이 돼요? 난 유부녀고 남편이 있어요.”
“유부녀에 남편도 있는 사람이, 시어머니 협박에 못 이겨 다른 남자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건 말이 돼요? 어차피 우린, 정상 범위에서 벗어났어요.”
“그래서 뭘 어쩔 수 있는데요? 당신하고 내가 뭘 어쩔 수 있냐구요. 난, 난, 이 집에서 한 발짝도, 꼼짝할 수도 없는데…….”
“숨을 쉬어요. 다른 데서가 아니라 내 옆에서 숨을 쉬어요. 나도 더 많은 걸 요구하지 않을게요. 나도 많이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당신이랑 웃으면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좋은 곳 있으면 바람도 쐬러 가고, 그런 거뿐이에요. 유연 씨랑 해 보고 싶어요.”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옷장이 있는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따로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의를 벗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놀란 토끼눈이 돼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내가 문을 닫자, 그녀가 다른 쪽 문을 열어 주었다. 곧 오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훈 씨는 어디 있어?”
“뭐 하러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안에서 옷 갈아입고 계세요.”
“그래 그런데 당신은 뭐 하러 여기 있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아무거나 입으라고 해요.”
“널린 게 셔츤데 뭘.”
문 안쪽에 따로 마련된 쪽은 셔츠와 양복이 가득했다. 신기한 건 택을 떼지도 않는 새 제품들이 일렬로 걸려 있었다는 점 이었다.
나는 곧바로 셔츠를 갈아입고 문을 열었다.
“어, 나왔어요? 얼른 내려가자고. 한잔 더 해야죠.”
“네. 그리고 셔츠 잘 입겠습니다. 깨끗이 세탁해서 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유연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안 그래도 돼요. 어차피 나는 한 번 입었던 거 잘 안 입으니까. 그냥 가져요.”
오 실장이 무심하게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한 번 입었던 걸 다시 입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냥 돌려주겠다고 수선 떨가봐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려가지.”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오 실장은 자신의 집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직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일 출근이 걱정되는지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과장 역시 그렇게 느꼈는지 오 실장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실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시간도 많이 늦었습니다.”
“어? 그래요? 아니지. 그래도 좀 더 해야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세요. 다른 분들도 내일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유연이 한 마디를 거들자 그제야 오 실장도 수긍을 하는 모양새다.
“그렇겠구만.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어. 오늘 기분이 좀 좋아서 말야. 다들 미안합니다. 오늘은 다들 잘 돌아가시고, 다음에 또 이런 자리 마련합시다.”
“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갈 준비를 하려고 할 때였다.
“지훈 씨는 남아서 나랑 한잔 더 하고 가지.”
유연 씨의 눈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실장님, 저도 내일…… 아닙니다. 그럼 실례 무릅쓰고 조금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요. 오늘은 나하고 술 친구 좀 해 줘요.”
“여보…… 그래도…….”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다른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집을 빠져나갔다. 이제 이 길고 넓은 테이블에 오 실장과 나, 그리고 유연 씨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서 한 잔 더하지.”
유연은 곤란해 하는 표정이었다.
남편과 내가 한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떠한 순간에도 오 실장이 하는 말에 내가 NO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완전한 그의 사람이 되길 원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오 실장이 잠시 비틀거렸다.
“제가 모실게요.”
내가 유연 대신 그의 팔을 잡았다.
“밖은 내일 아침에 치우시고 여긴 이야기들 하실 거니까 아주머니도 들어가시고 나머지 분들도 퇴근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1층에는 따로 마련된 다이닝룸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 홈 바로 마련된 공간이 있었다.
“앉아.”
“네.”
“지훈 씨.”
“네.”
“이제 사석에선 내가 말 놓아도 되지 않아?”
“물론입니다. 말씀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사석에서는 이렇게 말 놓고 지내자고. 따지고 보면 내가 형뻘 되는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또다시 술잔이 오고 갔다. 유연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뭘 그렇게 우리 마누라를 훔쳐보냐?”
“그럴 리가요. 사모님도 피곤하실 텐데 쉬시는 게 어떨까 해서…….”
“안 그래. 저 사람은 내가 들어가야 들어가. 신경 쓰지 마.”
“네.”
“우리 와이프 예쁘지?”
그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라면 못생겼단 거야?”
“그럴 리가요. 너무 아름다우시죠.”
“놀라긴…… 오늘 나랑 진탕 한번 마셔 보자구. 따로 할 얘기도 있고.”
“실장님, 내일 출근은…….”
“여기서 자고, 나랑 내일 사우나 갔다가 같이 나가면 될 거 아니야?”
“저, 실장님. 저는 신입사원입니다.”
“내가 과장에게 일이 있어서 데려간다고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
그는 말을 마치고 즉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단 몇 마디 만에 용무를 끝마쳐 버렸다.
“됐지?”
“네.”
유연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3층에 손님방도 있고 손님용 옷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 편하게 있다 가면돼.”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편하게 있으라고 한다고 편하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오 실장 눈치도 봐야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유연의 눈치도 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자네 신성로지스 알지?”
“네. 저희 회사 물류 쪽 파트너 아닙니까?”
유연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게 다른 쪽들은 정리하고 일감을 좀 몰아줘야 할 것 같아.”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사실상 곤란할 것 같습니다. 연수 때도 관련 주제들로 토론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 봤는데, 최근 검찰이나 다른 정부기관들도 눈여겨보고 있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좀 큰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내가 자네한테 하는 얘기 아닌가? 사실…….”
오 실장이 살짝 고개를 돌려 유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사실 신성로지스 신상만 회장이 우리 장인이야.”
“네?!”
“몰랐구나? 그러니까 이번에도, 할 수 없이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이번에도’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걸로 보아 그동안 몇 차례 도움을 줘 왔던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유연의 얼굴 표정이 뭘 뜻하는지 알았다.
“다른 곳들은 자회사 형태로 만들어서 몰아주는 곳들도 많아. 장인 회사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니까 하려고 들면 못 할 것도 없지. 뒤는 내가 봐 줄 테니까 자네가 좀 힘써 줘. 다음 주부터 얘기가 있을 거야 아마.”
이것도 이미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는 것에 불과했다. 지금도 내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그저 지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마당에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성 쪽은 꽤 내실 있는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좀 힘든가 봅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이 사람하고 연애할 때도 한 번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사이즈가 큰 것 같아. 내가 모른 척하면 꼼짝없이 도산할 판인데, 그릴 수……야 있나?”
그는 살짝 웃으며 유연을 쳐다봤다. 왠지 모르게 야비해 보였다.
“공정위나 여러 쪽으로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내가 뒤를 잘 봐 줄 테니까 꼼꼼하게 일 좀 처리해 줬으면 좋겠어. 따지고 보면 이것도 집안일이거든. 그러니까 말이 새 나가지 않고 조용히 잘 끝났으면 좋겠어.”
“자세한 건 회사 들어가서 검토하겠습니다.”
그는 갈수록 나에게 막중한 임무들을 맡겨 오고 있었다.
“그러자구…… 여보, 보드카 좀 내오지. 잔들도 싹 갈아줘.”
그녀는 아까 전부터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 눈에 예전부터 몇 가지 이상했던 점들이 하나둘 거슬리기 시작했다.
입사 후 탕비실에서 다른 직원이 멀쩡한 새 컵들을 버리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실장님이 한 번 사용한 컵을 다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술집이나 다른 곳에서도 그는 자주 잔을 교환하거나 바꿔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오늘 옷장에서 본 뜯지도 않은 채 걸려 있던 셔츠들.
이건 어떤 성향인 걸까…….
“뭐해 마시지 않고?”
“네.”
“오늘 나랑 끝까지 마시고, 여기서 자는 거야. 그리고 아침에 같이 사우나나 가자고.”
“알겠습니다.”
보드카가 몇 잔이 들어가자 그도 한껏 취기가 오른 모양인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게다가 눈도 살짝 풀렸다.
취했을 때는 이상적인 판단이 힘들 때이기도 하지만 가장 솔직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실장님은 새 것들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으신가 봐요……?”
‘철학’이라는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조심스럽게 돌려서 말하기 위함이었다.
“허, 허허허…… 철학까지는 아니지…… 뭐랄까…… 말하자면 말이야…….”
나를 바라보는 게슴츠레한 그 눈이 독사 같아 보였다.
“불신……이지, 내가 믿지 못하는 것들이라면 미리미리 갈아 치워 버려야지. 그래서 나는 내가 처음 건드리는 것들을 신뢰하지. 일도 물건도…… 사람도. 우리 집사람도 내가 첫 남자였어.”
“여보!”
유연의 얼굴이 새빨개진 만큼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서 목소릴 높여?”
그는 오히려 나지막하게 말을 뱉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그 목소리가 오히려 사람을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앉아.”
0초를 향해 달려가는 시한폭탄을 두고 앉은 기분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우리를 감싸고 돌았다. 결국 유연은 어쩌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코올의 힘인지 원래 모습인지 모를 오 실장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왠지 이런 상황이 익숙할 것 같았다.
“이런 내가 이상한가?”
“아, 아닙니다.”
“새것들도 있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질 때! 그리고 그들의 것을 뺏어 올 때, 살아 있는 기분을 느껴. 나도 알아. 내가 약간 특이하단 거. 약간이 아닌가?”
거기에다 대고 특별히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너한테는 자꾸 뭘 보여 줘야 할 것 같아. 이상하게 탐이 나거든. 다른 놈들처럼 내 눈에 들려고 바닥을 기는 것처럼 꼬리 흔드는 모습이 너한텐 없어. 적당히 지킬 건 지키면서 또 필요할 땐 숙이지. 그래서 네가 맘에 들어. 내가 드러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보여 줄 거야. 그럼 넌 그만큼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그만큼 나에게 멀어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알겠습니다.”
“저 사람이 신경 쓰이나?”
“아니요.”
“신경 쓸 필요 없어. 나한텐 비싼 값을 치르고 가지고 있어야 할 소장 가치 높은 인형에 불과하지. 저걸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남자들이, 모두 다 날 우러러보거든. 그건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지. 저 여자는 나한테 그런 우월감을 주는 여자야. 근사한 여자지…….”
한 여자의 인격을 단번에 박살 내 버리는 충격적인 말들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저 묵묵히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도 우리는 아주 행복한 커플이 될 거야. 신유연은 우리 회사의 얼굴이 될 거고 내 사업에 있어서도 도움을 주겠지. 앞으로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거야, 여러 모로 말이야. 내가 투자한 만큼…….”
***
새벽4시.
오 실장은 테이블에 기대 늘어지더니 급기야 얼굴을 처박고 엎드려 버렸다. 처음에는 부축을 하려고 했지만 아예 걷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아 둘러업어 버렸다.
“안 되겠어요. 방으로 안내해 줘요.”
나의 말에 그녀가 말없이 앞장을 섰다. 3층 정중앙에 있는 방문을 열자 엄청난 크기의 방이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본 적도 없었던 엄청난 크기의 침대와 호화로운 가구들이 방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 실장과 유연의 결혼사진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녀는 지금보다는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던 걸까?
“여기로.”
“우엑~”
그 순간 그가 내 등에 구토를 하고 말았다.
“어떡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연도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그의 구토로 인해 셔츠는 물론 바지까지 다 버려 버렸다.
“수건 좀 줘요.”
나는 일단 오 실장을 침대에 눕혔다. 그는 내 덕에 입가만 닦아 주면 될 정도로 깨끗했다.
먼저 유연이 가져다 준 수건으로 그를 닦았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토사물을 닦으려 하고 있었다.
“건들지 마요! 더러우니까. 내가, 할게요.”
나는 그녀를 만류하고 바닥을 닦았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괜찮으니까 가만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는 재빨리 바닥을 닦아 냈다.
“화장실이 어디에요?”
같은 방 안, 침대를 지나쳐 맨 끝 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그녀가 내 뒤를 따랐다.
화장실도 역시나 대궐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돌들로 꾸며진 욕조와 장식들이 자리해 있었다.
문득 내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인식했다. 서둘러 이 더러운 오물을 씻어 내고 싶었다. 나는 더러워진 셔츠와 바지를 벗었다.
“지훈 씨, 여기선.”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설마 여기 카메라 같은 건 없죠?”
“3층엔 거실에만 있어요.”
설마 하는 생각에 물어본 건데 집 안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나 보다. 하긴 요새는 일반 가정집에도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남편이 카메라 같은 걸 확인해요?”
“모르겠어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확인하는지도 저도 몰라요.”
유연은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은 최고의 대기업 총수가 사는 집이다. 곳곳에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이게 단순한 방범용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