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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제안 35장. 서 마담의 눈물 (2) / 36장. 은밀한 바캉스 (1) 38화

무료소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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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35장. 서 마담의 눈물 (2) / 36장. 은밀한 바캉스 (1) 38화

언젠가부터 날짜를 세는 기준이 달라졌다. 아주 어릴 때는 방학을 기준으로 날짜를 셌고, 군대에 가서는 전역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따졌다. 하지만 지금은 유연을 만나는 날과 만나기 전 며칠로 날짜를 센다. 내 삶의 모든 부분에 그녀가 들어와 있었다. 그 자체가 기분 좋고 설레는 일이었다.

이제 하루만 더 기다리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점심시간.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오 실장이 밖으로 나오더니 나를 불렀다.

 

“나랑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

 

“어딜요?”

 

“병원에 가야 돼.”

 

“누가 편찮으십니까?”

 

“어, 새한국당 박 의원이 병원에 입원했대.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 줘야지. 가뜩이나 오늘 짜증 나는데.”

 

오 실장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점심은 오다가 같이 먹자.”

 

오 실장이 뒷좌석에 타고 나서야 어느 병원으로 갈 건지를 물었다.

 

“세한병원으로 가.”

 

“세한병원이요?”

 

“왜?”

 

“아니요. 어제 다녀온 데라서요.”

 

“어제? 어제 언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나랑 같이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누가 아파 무슨 일로 갔는데?”

 

마땅한 알리바이가 떠오르지 않을 땐 그냥 진실을 말하는 편이 나았다.

 

“사실…… 어제 실장님 대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서 마담이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병원까지 좀 태워다 드렸거든요.”

 

“그 시간에 병원은 왜? 일가친척도 없다고 하던데.”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나중에라도 거짓말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냥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드님이 아프답니다.”

 

“그래?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그거까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위중한 모양입니다.”

 

“아들이 있는 줄은 몰랐네…… 역시 사람은 모른다니까…….”

 

스쳐 가는 말이라도 ‘그거 참 안됐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라는 말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와중에 내가 그를 불러 세웠다.

 

“실장님…….”

 

“왜?”

 

“의원님 병실에 저는 안 들어가도 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왜?”

 

“잠깐 먹을 것 좀 사서 갈 데가 있어서요.”

 

그가 잠시 날 쳐다봤다.

 

“서 마담 찾아가 보려고?”

 

“네, 허락해 주신다면요.”

 

“너도 마음이 약해서 큰일 났다. 그런 데다가 마음 쓰지 마. 그렇게 죽어 가는 애들이 한둘이냐?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애미가 그런 데서 일하는데, 그 자식새끼 씨가 어디서 왔는지 뻔한 거 아니냐? 근본 없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싸질러 데다가 애새끼가 태어나니 그 모양이지…… 누구 탓할 것도 없어.”

 

무슨 짜증 나는 일이 있는지 엄한 데다가 화풀이 하는 모양새였다. 뭐, 딱히 이것보다 훌륭한 인품이 아니 긴 했지만 말이다. 당장이라도 저 주둥아리를 찢어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제가 마음이 안 그래서…….”

 

“하여간…… 쯧쯧, 다녀와. 나도 얼마 안 걸릴 거야. 1시간 후에 로비에서 보자.”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걸 보고 난 후에야 나도 식당가가 있는지 찾아보러 모퉁이를 돌아서 나왔다.

 

“어…….”

 

코너를 돌아 나가려던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심장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서 마담이 거기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수납한 종이가 들려져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병원비를 정산하러 내려왔던 모양이다.

 

“혜진 씨…….”

 

“오셨어요?”

 

혹시라도 오 실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까 봐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어 보였다.

 

“여기는 무슨 일로……?”

 

“아…… 저기…… 그게 전 그냥 따라, 왔어요.”

 

“네…….”

 

“아직 식사 전이죠?”

 

“괜찮아요, 전.”

 

마치 죽은 나무처럼 생기 하나 없이 완전히 바짝 말라 있는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아프면 사람들은 먹는 것에도 죄의식을 느끼곤 한다. 그게 엄마라면 더 더욱 그럴 것이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애 엄마가 이지경인데 누가 누구를 간호하겠어요. 누구를 돌보는 것도 체력싸움이에요.”

 

무작정 서 마담에 팔을 끌고 걷다 보니 병원 1층 한구석에 죽 집이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전복죽을 시키고 그녀를 자리에 앉게 했다. 생기 있던 그녀의 입술이 다 터서 말라 있었다.

 

“마셔요.”

 

물을 따라 주자 그녀가 한 모금을 들이켠다. 물마저도 억지로 삼키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몸 상해요. 이렇게 아파 보이는 엄마 모습을 보면 현우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저 같은 건…… 흑…….”

 

그녀의 눈물샘이 또 고장 난 모양이었다. 서 마담은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이제 더 이상 쏟아낼 눈물도 없을 것 같았지만 엄마는 그런 게 아닌가 보다.

 

“한 술 떠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족도 없고 의지할 데가 아무 데도 없다고 했죠? 혜진 씨 쓰러지면 현우는 누가 보살펴 줄 것 같아요? 엄마잖아요…… 좋은 엄마는 별거 아니에요. 아이 옆에 있어 주는 게 좋은 엄마예요. 버텨요. 혜진 씨 좋으라고 먹으라는 게 아니에요. 아이 옆에 붙어서 버티려면 뭐든 먹어야 할 거 아니에요?! 아이 포기할 거예요? 금방 나가떨어지고 싶어요? 아니잖아요. 아이만 생각해요. 혜진 씨 아들, 엄마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거 먹고 씩씩하게 엄마도 잘 버티고 있다는 거 보여 줘요…….”

 

내가 건넨 숟가락을 그녀가 받아 들었다. 꾸역꾸역 한 숟가락씩 모래를 삼키 듯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래요…… 먹고 힘내요…….”

 

그녀는 먹으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그 복잡한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녀는 부모였다.

 

“이제 그만 가…… 보세요.”

 

“혜진 씨 먹는 거 다 보고 갈게요.”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도 다 먹고 잘 버틸게요. 그리고 지훈 씨가 나한테 해 준 말들, 이…… 죽 한 그릇 평생 안 잊을게요.”

 

그녀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장님 기다릴 테니까…… 어서 가 봐요…….”

 

순간 나의 착각이었을까? 무표정하리만큼 차가운 그녀의 얼굴을 본 건…….

혜진은 다시…… 수저를 입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36장. 은밀한 바캉스 (1)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서 마담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누구를 따라왔다고 했지 오 실장과 함께 왔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정확하게 오 실장에게 가 보라고 말했다.

 

‘오 실장과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

 

모퉁이를 돌아서 만났던 서 마담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었던 오 실장의 말을 그녀가 들었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식당을 나오기 전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 절단을 냈을 것이다.

 

‘아마…… 못 들었겠지?’

 

평소에도 항상 내가 하는 일이 오 실장을 수행하는 거라는 걸 서 마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래, 그런 거겠지……. 영리한 여자니까.’

 

오후 시간에 나른함을 깨우려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 비서님의 호출이 왔다. 회장님이 보고 싶어 하신단다.

유연이 임신한 줄 알고 기대가 컷을 텐데 아마도 그 일과 관련해 한 소리를 하실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화장실 앞에서 이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 한가운데 송 회장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셨습니까 회장님.”

 

최대한 깍듯하게 90도에 가까이 허리를 꺾었다.

 

“앉아요…….”

 

차향이 은은하게 주변을 맴돌았다.

 

“요즘 우리 현태와 같이 다닌다지?”

 

“그렇다기보다는 실장님이 필요할 때마다 기사 노릇 정도 하는 게 전부입니다.”

 

“흠…… 그래요. 우리 아이가…… 미안해요, 하핫, 나한테는 아직 얘라서.”

 

송 회장이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오 실장이 지훈 씨를 굉장히 믿고 있는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 않아요? 지훈 씨는 어쨌든 그 아이를 속이고 있는 거잖아요…….”

 

나를 떠보는 건가?

무슨 속셈이지?

 

“회장님하고 저와의 관계에서는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에겐 회장님과의 먼저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선에서 행동할 뿐이지 실장님을 기만하거나 배신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와의 약속이라…… 흠, 사실 이번에 기대를 했었어요.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문책을 하겠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말을 듣자는 건 아니고…… 이제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뭐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이 문제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은 없어요.”

 

“…….”

 

“대신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지훈 씨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의사의 말에 따라 자연임신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걸릴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때까진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거예요.”

 

“네.”

 

“물론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게 충분히 나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첫 달이니까 얼굴도 익히고 부담 주지 않으려고 크게 간섭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간섭할 생각은 아니에요 다만……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꼭 검사를 하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여자는 배란일이라는 걸 예측할 수가 있어요. 물론 백 퍼센트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 기간에는 괜찮은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며늘아기를 만나도 괜찮아요. 어떤 목적이든 상관없어요. 성욕을 푸는 행위라 해도 관계없어요. 그 나이 대는 한창 끓어오를 나이니까…….”

 

“…….”

 

역시나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었다. 요즘 세상에 호부견자. 즉, 호랑이 같은 아비에 개 같은 자식마저도 잘 없는가 보다. 개 같은 어미에 개 같은 자식 놈이었다.

 

“만나는 시간은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오 실장도 크게 의심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둘 다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둘 사이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하긴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그 아이 자체가 워낙 돌덩어리 같은 아이라…… 예쁘장하긴 하지만 남자로서 크게 호감을 가지기엔 힘들겠지. 우리 현태도 그랬으니까…….”

 

“…….”

 

“앞으로 오 실장 잘 부탁해요…… 그리고 그 아이의 동태를 잘 살피고 특이한 점이 생기면 나한테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중첩차 노릇이라도 하라는 건가……?

 

“어떤…… 점을 말씀 하시는 겁니까?”

 

“어떤 술집에 가서 어떻게 놀았는지를 보고 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깟 계집들 하룻밤에 열댓 명을 품어도 상관하지 않아요. 그 이외에, 오 실장이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 아들이 평소에 하는 생각 같은 걸 엿들을 기회가 있다면, 나에게 알려 줘요.”

 

“네.”

 

“한 가지 묻죠. 지훈 씨는 누구의 사람인가요? 오 실장이에요 나예요?”

 

송 회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대답은 간결해야 한다. 먼저 약속하고 돈을 건네받은 사이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회장님입니다.”

 

“좋아요. 가 봐요.”

 

***

 

[연일 35도를 넘는 무더위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라디오 뉴스에서는 무더위와 관련한 뉴스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다들 어디로 떠나서인지 오히려 도심이 한가해 보였다.

오늘은 나도 여기를 벗어날 예정이다. 물론 혼자가 아닌 유연과 함께 말이다.

멀리서 유연이 걸어왔다. 햇살에 비친 쭉 뻗은 그녀의 다리가 시원스럽다. 더해 하늘하늘한 상의와 선글라스까지, 모델이 따로 없었다.

그녀가 차에 올라탔다.

 

“오랜만, 으흡.”

 

정말 1초도 더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달콤한 입술과 따뜻한 숨결이 그리워서 요 며칠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으웁, 음. 아…… 지훈 씨……?”

 

그녀가 날 보고 웃는다. 뻥 뚫려 있던 마음 한구석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방금 만났고 그녀가 내 앞에 있을 뿐인데 말이다.

 

“누가 나보고 하루를 더 기다리라고 했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 거예요.”

 

“아마 미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헤헤.”

 

“난 진짠데…….”

 

심통 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계속 나를 바라봤다.

 

“만약에 누가 하루를 더 기다려라고 했다면, 아마…… 내가 도망 나왔을 거예요! 나도 기다리느라 미치는 줄 알았으니까…… 헤헷, 이젠 비겼죠?”

 

이렇게 따뜻하고, 애교 많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여자였다. 지금은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돌덩어리라고, 차가운 여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가 웃는 모습, 하는 말 한 마디가 나에게는 다 소중하고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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