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고추와 전복)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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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고추와 전복) 11화
"하, 할머니..."
이 정도까지 되니 이제는 유리가 할머니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말리지 않았다가는 할머니가 정말로 형준을 때려 죽일 기세였으니까.
'저런 사람이면 성욕을 풀 곳도 없을 테니까......'
사실 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대한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성욕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장애인이기에, 게다가 성교육에 대해서 터부시되는 한국의 교육상 자신의 몸이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지적장애인이 성욕 때문에 성인광고 찌라시를 모으고 그것을 막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유치원생들이나 볼법한 어른이 몸을 만지려고하면 만지지 마세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런 수준의 연극을 보여주는 수준이라는 것이 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현실이었다.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단체에서는 섹스 봉사라는 개념도 있었지만 역시 많은 경우는 없었다. 그나마 도시권이나 그런 곳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성매매라도 시켜주거나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서 풀겠지만 이런 곳에서는 풀 수 있는 대상도 없고 풀 방법도 모를테니 저런 상황은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져야 했다.
물론 유리도 자신을 보고 몽정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성적으로... 아예 자신을 보고 자위를 한 것도 아니고 몽정한 것까지 할머니에게 얻어맞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이구 미안혀 아가씨. 이 놈이... 이 놈이 좀 멍청해서...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혀."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내가 저놈이 다신 그러지 않게 똑똑히 혼낼테니까, 미안혀."
"괜찮아요, 알고서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요."
할머니는 연신 유리에게 허리를 숙여서 사과하고 유리는 애써 괜찮다고 대답해주고 있었지만, 호준은 여전히 빳빳하게 남근을 세운 채로 두 사람의 모습을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식사로는 할머니가 손수 기른 야채들과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가 나왔는데, 사실 유리는 된장찌개를 굉장히 싫어했으나 먹을 반찬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가져갔는데 한 입을 먹어보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싸구려 공장제 된장과는 다른 시골 특유의 구수한 맛이 섞여 있어서 된장에 호박 정도만 썰어넣은 것이었지만 유리의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평상시에는 공기밥 한 그릇도 다 먹지 못하는 유리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큰 밥그릇을 뚝딱 비웠을까.
"할미, 나 한 그릇 더 주라."
"적당히 쳐먹어 이놈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할머니는 밥을 꾹꾹 눌러담아 형준에게 한 그릇 더 주었고, 형준은 그것도 뚝딱 비워버렸다.
"오늘은 뭐 할겨?"
"일단, 호준씨라고 했던 분의 집으로 가볼려고요."
"호준이...? 그놈 집에는 왜 가는겨?"
호준의 이름이 나오자 할머니의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언니가 그곳에 잠시 들렸었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명함도 받았다고 하던데..."
"호준이 그 놈은 안 돼. 아주 나쁜 놈이여."
"예?"
"지난번에 형준이 놈이 비얌한테 물려서 끙끙 앓고 있는데 병원에도 안 데려다주고 지 축사만 신경쓰던 놈이여. 그리고 태풍인가 뭔가가 와서 우리 밭에 물난리가 났는데 우리 밭은 안 도와주고 영순이네 논만 도와주고..."
"아하하... 그래요?"
할머니들, 특히 이런 시골의 할머니들은 작은 일로도 앙심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유리의 경우도 외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의 자잘한, 알고보면 그 사람들에게도 다 사정이 있어서 이해할만한 일에도 꽁하니 마음에 품고서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하고 다니던 것을 알기에 삼순이 할머니의 행동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제가 가기는 가야 되는데, 언제쯤 찾아가는게 좋을까요?"
"그 놈 요즘 점심은 새참 안 싸오고 지네 집에서 쳐먹으니까 점심 때 맞춰서 가보면 될겨."
* * *
유정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다시 그녀가 갇혔던 밀폐된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다른 점이라면, 지금 이곳에는 푹신푹신한 매트와 깨끗한 이불이 깔려있고 그녀를 묶고 있는 사슬이 긴 것으로 교체되어 있어서 이 방을 빠져나가지는 못하지만, 예전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묶여있는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아예 옷이 없이 벗겨져 있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속옷은 입지 못했지만 그래도 몸을 가릴 수 있는 원피스 하나는 입혀져 있어서 완전히 알몸인 상황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누군가를 고문할 때 옷부터 벗기는 이유가 다른 동물과 사람이 차별화되는 것이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을 벗김으로써 심리적으로 상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동물에게 옷을 입히는 경우는 비록 동물이라 할지라도 사람처럼 대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유정은 비록, 속옷이 없어서 자신의 유두가 그대로 드러나고 길이도 짧아서 조금만 움직이면 음부가 드러날 정도로 제대로 된 옷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라도 걸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입고 있기에 불편함이 없고 편안한 면으로 만든 원피스로써 집에서 간단하게 속옷을 입고 돌아다닐 정도의 생활복이었다. 어디에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유정에게 약간 작은 크기인지라 엉덩이는 거의 드러나는 바람에 억지로 치맛자락을 늘려야지만 음부와 엉덩이를 노출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어난거여?"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호준이 들어왔다. 그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유정이었지만 어젯밤의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자신에게 약을 발라주던 그 손길이 기억나서 처음처럼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제 겨우 밥 맥였더니 다 토하구 말이여. 그렇게 속이 안 좋을 때에는 이런걸 먼저 먼저 먹어야 하는겨."
호준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작은 냄비였고, 그곳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정은 어젯밤에 격렬하게 구토를 하면서 쏟아내는 바람에 고생해서 먹었던 음식이 다 비워진 상태였고 그녀는 다시 굶주리고 있었지만, 잠에 빠져드느라 몰랐던 것 뿐이었다.
음식의 냄새, 그것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유정은 티가 날 정도로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호준도 그 모습을 보고는 씨익,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마치 자랑하듯이 유정이 보는 앞에서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자, 오늘 아침은 이거여."
호준이 들고 온 냄비의 뚜껑을 열자, 그곳에는 잘게 썰려있는 야채와 군데군데 들어가 있는 전복, 그리고 갈색으로 살짝 물든 하얀 쌀이 맛있게 어우러진 전복죽이 들어 있었다. 유정은 어릴 때부터 전복죽이라면 너무 좋아해서 아프지 않더라도 전복죽을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고, 또한 성장하고 나서도 일부러 죽 전문점에 가서 전복죽을 사와서 먹는 경우도 많았다.
유정이 그것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자, 호준이 냄비를 뒤로 빼면서 말했다.
"잠깐, 먹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거 아니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