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노예 (죽이거나 죽거나) 34화
무료소설 축사노예: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축사노예 (죽이거나 죽거나) 34화
원칙적으로 삽이 흉기는 아니지만 날카롭게 잘 갈린 삽날은 사람의 살은 우습게 가를 수 있었다. 특히 연약한 여성의 목 정도야... 그게 아니더라도 전력으로 휘두른 삽날은 목뼈를 부러뜨리기에도 충분했기에, 가지고 있는 삽만 가지고도 유정을 몇 번이고 죽일 수 있었다.
"아니면 대갈통을 깨부수던가."
"......"
손에 든 삽을 움켜쥐고 형준이 서서히 다가온다.
"......"
형준에게 겁탈당한 뒤 삶을 포기한 것처럼 멍하니 있던 유정은......
"히... 히이익..."
그래도 살고 싶었던 것일까. 곧바로 호준의 다리에 다시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뭐 시발년아. 내가 왜?"
"뭐든지 다 할게요. 조용히 축사에 들어가서 얌전히 있을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쩍쩍 갈라진 유정의 목소리를 듣는 호준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물든다. 호준은 그녀를 걷어차려 했지만 유정은 필사적으로 호준의 다리에 붙어 있었다.
"나 죽이기 싫다."
그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꼈는지, 형준도 들어올렸던 삽을 다시 내리면서 호준을 보고 있었다.
"뭐? 너 바보야?"
"형준이 바보 아니다!!"
형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부정하자 호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등신 새끼야. 니가 이 년한테 한게 바로 강간이야. 강간이 뭔지 알아?"
"잘 모른다."
"니 고추를 이 년 구멍에 쑤신게 바로 강간이라고. 이 년이 이제 경찰을 만나서 내가 강간당했다, 형준이라는 새끼한테 억지로 쑤셔져서 내 뱃속에 한바탕 싸질렀다, 이 한 마디만 있으면 넌 끝이라고."
"......"
"테레비에 나오는 놈처럼, 경찰한테 잡혀가서 평생 콩밥 먹어야 한다고."
"겨, 경찰 아저씨 싫다. 무섭다. 삼순이 할미랑 같이 있고 싶다."
"그래 이 병신아! 그러니까 이 년을 죽여야지 경찰한테 안 잡혀가지 빙신새끼야!"
그 말을 듣고 형준이 다시 삽자루를 쥐자, 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부정했다.
"안 그럴게요. 절대 신고 안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 필사적인 행동을 비웃듯이 호준은 형준에게 한 마디를 보탰다.
"너 시발 옛날에 그랬지? 읍내에 나가서 돈 100만원 가져오면 너 기분 좋게 해준다던 티켓다방 시발년 있었지? 걔가 어떻게 했어?"
"거짓말했다... 돈 가지고 도망쳤다."
"그래 시발! 이런 년들은 다 우리 등쳐먹을 생각밖에 없어. 이 년이 살아봐? 경찰한테 가봐? 분명히 우리가 자기 죽이려고 했다, 자기 겁탈했다, 그렇게 말해서 우리 인생 망치게 만들거라고 이 등신새끼야. 그러니까 너 좆되기 싫으면 죽여서 그냥 묻어버려."
"아니에요. 제발... 안 그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시발 이런 년 하나 죽여서 묻어봐야 아무도 몰라! 시체 찾아봐야 누가 죽였는지도 모르고."
쏟아져내리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자신에게 달라붙어 애걸하는 상황 속에서 형준은 손을 벌벌 떨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이 마을, 강금리에서 호준의 말은 은근히 절대적이었다.
예전, 일제시대부터 6.25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이 강금리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 호준의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던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 호준은 지주에 가까운 위치였다.
어린 시절에 나이 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호준에게 고개를 숙이고 도련님, 도련님하면서 부르는 존재였다. 흔히 말하는 지역 유지였던 것이다.
최근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형준에게 있어서는 호준을 두려워하며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
하지만 형준은 어째서인지 삽자루를 만지작거리면서 호준의 눈치만 볼 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것일까.
형준이 지능이 낮을지언정, 무엇이 잘하는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인지는 알고 있었다. 성적인 것이야 삼순이 할머니가 가르쳐주지 않은 분야였기에 넘어갔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발... 야, 삽 내놔."
호준은 형준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 손을 내밀었다.
"......"
하지만 형준도 지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아예 금치산자 수준은 아니었기에, 지금 삽을 줬다가는 바로 유정을 해칠 것을 알고 삽을 몸 뒤로 숨겼다.
"내놓으라고 이 시발 새끼야!"
호준이 열받아서 몸을 일으켜서 형준에게 다가간다. 곧바로 형준이 숨긴 삽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형준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을 주었다.
"이 등신 새끼가 감히......!"
형준은 모자라기는 했지만 힘이 좋았다. 솔직히 남들이 게으름 피우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일들도 다 해주고 성실하게 일했기에 노동으로 단련된 몸과 이제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호준의 몸과는 달리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는 호준에게 있어서 조금 힘들게 느껴질 정도의 피지컬이었다.
"이런 시발 새끼가... 내놔! 당장 안 내놔?!"
"시, 싫다!"
"이 개자식이!!"
호준이 형준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빗물에 의해 진흙탕이 되어버린 바닥이 무너지면서 호준의 장화가 미끄러졌다.
"어?"
그리고 호준은 가파른 경사를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퍽퍽, 돌에 살이 얻어맞는 소리가 들리고 호준의 몸이 물과 진흙을 타고 바닥으로 굴러간다.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고 있었지만 그 기세를 멈출 수는 없었고, 결국 호준은 눈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다.
마치 가죽부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호준의 움직임이 멈추고 그 광경을 형준과 유정이 바라보았다.
"아... 으아아아!! 내가 한거 아니다! 형준이 잘못 아니다!!"
형준은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서 들고 있던 삽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쏟아져내리는 비를 맞으며 옷 하나 걸치지 못한 채 체온이 떨어져가고 있는 것을 느낀 유정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형준이 버리고 간 삽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무등치에서 기절해 있는 호준에게 다가갔다.
"하아... 하아아......"
경사를 구르면서 잘못 부딪쳤는지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코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유정은 자신의 부러진 손가락과 비를 맞고 있는 삽날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그리고 마치 도끼로 장작을 쪼개는 것처럼, 양손으로 힘껏 삽자루를 붙잡고 그 끝을 들어올렸다.
* * *
"......늦네."
유리는 폭우와 함께 번개가 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에 일하러 간 호준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조금 불안했던 것일까.
"전기도 나가버렸고......"
아까 근처에서 벼락이 치더니, 잠시 후 아예 전기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보일러는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고 충전해놓은 휴대전화를 후레쉬처럼 사용해서 간단한 일은 했지만.
그래서 호준이 돌아와서 나가버린 두꺼비집을 고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도 원래 집에서 퓨즈가 나간 정도는 바꿀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곳의 두꺼비집은 축사와도 이어져 있어서 뭔가 복잡한 설비가 되어있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응?"
거센 빗소리 너머에서 무언가 질질 끌고 오는 소리가 들린다. 유정은 집에 놓여있는 우비를 쓰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저 멀리, 이 집으로 오는 골목에서는 우비를 쓴 누군가가 절뚝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어둡고 비가 거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냄새는 뭐지?'
비가 내리면 기본적으로 냄새에 민감해지는 법. 유리는 자신의 코에 느껴지는 비릿한 쇠냄새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피냄새와도 같은......
주변에 번개가 다시 한번 내려치고, 불이 꺼졌던 가로등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가로등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호준씨?"
절뚝거리면서 한쪽 허벅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호준이었다.